아도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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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독립운동의 산실, 아도서숙(亞島書塾) 
충절의 고장 무섬마을에서 가장 이름을 빛낸 것은 애국지사들의 활동거점이었던 ‘아도서숙(亞島書塾)’입니다.

‘아도’는 아세아 조선반도 내 수도리의 줄인 말이고, ‘서숙’은 엣날 서당을 가리키는 말로, 1928년 10월에 열어 1933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문을 닫을 때까지 무섬마을의 교육기관이자 지역 항일운동의 거점 역할을 했습니다.

유학을 목적으로 일본 동경에 갔던 김화진은 취학(就學)을 하지 않고 조선청년동맹에 가입하여 활약 중 영주 청년동지들의 부름을 받고 귀국하였습니다.

이 공회당인 서숙은 교향 등지에서 청년운동 중인 김성규, 김용한, 김광진, 김계진 등이 모의(謀議)하여 9명의 운영위원을 선출하여 공회당을 건축하고 ‘모임의 장소, 배움의 장소, 단결의 장소’로 ‘아도서숙’이라는 명칭을 붙였습니다.

그 이후 문맹퇴치, 민족교육, 민족정신 고양 등을 주요사업으로 하여 농민계몽활동과 독립운동을 동시에 펼쳐나갔습니다.


아도서숙 운영위원들은 일제의 감시와 탄압으로 검거와 투옥을 반복하면서도 끝까지 지역 독립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했습니다.

무섬마을의 역사는 물론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아도서숙’은 아쉽게도 현재 빈터만 남아있으나 복원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