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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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무섬마을은 전국의 단일 마을 중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곳입니다.

 또한 유생(儒生)인 백년서생(百年書生)들이 대외투쟁 한 기념비적인 동네이며, 대부분 내외가 일가친척들이 단합하여 일으킨 운동이란 특색을 갖고 있습니다.

1928년 마을에 공회당을 짓고 한편으로는 문명퇴치에 힘썼으며, 지하운동으로 들어가 농민조합, 비밀결사인 반제동맹적색농조가 되었습니다.

5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약 90명의 포위공격을 받아 한 포승(捕繩)에 묶여 피눈물을 흘린 마을공회당이 아도서숙입니다.
한을 풀지 못하고 가신 분들을 글줄로서 한 대 묶어봅니다.

1차: 9명 - 김화진(金華鎭), 김종진(金鐘鎭), 김성규(金性奎), 김계진(金啓鎭), 김명진(金命鎭), 김광진(金光鎭), 김우규(金宇奎), 김희규(金熙奎), 박찬하(朴贊夏)

2차: 12명 - 3명 추가 김우진(金宇鎭), 김정한(金定漢), 김봉손(金鳳孫)

3차: 18명 - 6명 추가 박찬상(朴贊尙), 박승민(朴承民), 박승서(朴勝緖), 박해양(朴海陽), 김동성(金東星), 윤비택(尹比澤)

참여자: 김용한(金龍漢), 김용진(金鎔鎭), 김지현(金之鉉), 김용(金溶), 김제안(金濟安), 김원진(金原鎭), 김영진(金寧鎭), 김제선(金濟璿)

이와 같은 활동으로 김성규(金性奎; 1904~1946), 김명진(金命鎭; 1908~1950)이 건국포장에 추서(追敍:죽은 뒤에 관등을 올리거나 훈장을 줌)되었고, 김종진(金鐘鎭; 1904~1952), 김화진(金華鎭; 1904~1946), 김계진(金啓鎭; 1907~1980)이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