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섬마을이 배출한 선비들

본문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무섬마을소개무섬마을이 배출한 선비들
Home >무섬마을소개 > 무섬마을이 배출한 선비들

무섬마을이 배출한 선비들 
무섬사람들은 입신양명(立身揚名)과는 거리가 먼 유교적인 삶을 살았지만 정계에 진출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헌종(憲宗) 6년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병조참판(兵曹參判)을 역임한 박제연(朴齊淵)과 고종(高宗) 때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지낸 김락풍, 고종 25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承文院 正字)를 지낸 김휘병(金輝柄) 등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또 음보(蔭補:조상의 음덕으로 벼슬을 하는 것)로 직함을 가진 사람이 선공가감역(繕工假監役)을 지낸 김영종(金永琮) 외에 몇 명이 있으며, 실제 행직(行職)을 수행한 사람은 구한말(舊韓末) 궁내부주사(宮內府主事)를 지낸 김휘돈(金輝敦)과 판임관(判任官)을 지낸 김광규(金光奎) 두 명이었습니다.

또한 향리(鄕里)에서 실시하는 초시(初試:생원 진사과)에 합격하여 진사를 역임한 사람이 4명이고, 문행(文行)이 뛰어나 후학을 양성했던 섬계(剡溪) 박제익(朴齊翼), 만죽(晩竹) 박승훈(朴勝薰), 동계(東溪) 김휘택(金輝澤), 수촌(水村) 김승학(金承學)은 문집(文集)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